최근에 “공황장애”라는 단어는 뉴스나 SNS, 직장 내에서도 자주 들리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익숙해졌다고 해서, 우리가 공황장애라는 심리적 상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황장애는 단순한 불안이나 긴장 상태가 아닙니다. 극심한 공포가 갑작스럽게 밀려오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동반하는 심각한 심리적·신체적 증상입니다.
많은 공황장애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고, 불편한 감정은 말하지 않고 삼키며,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은 점점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굳어집니다. 감정은 억제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몸을 통해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공황장애는 마음이 보내는 ‘위험 신호’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 신호의 이면에는 말하지 못한 슬픔, 참아온 분노, 설명하지 못한 억울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감정들이 계속해서 억눌리면, 뇌는 그것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공포 반응(Panic Response)을 과잉 활성화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공황장애의 정서적 원인을 감정 표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공황장애의 회복과 관리에 왜 중요한지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공황장애의 정서적 뿌리와 억눌린 감정의 연결
공황장애는 뇌의 ‘편도체(Amygdala)’가 위협을 과잉 감지하여, 현실의 위험보다 훨씬 과장된 신체 반응을 유발할 때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편도체는 단순한 생물학적 기관이 아니라, 감정을 처리하고 기억하는 핵심적인 감정 센터입니다. 따라서 편도체가 과민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무의식 속에서 지속적으로 쌓일 때입니다.
많은 환자들은 공황 발작을 겪기 전,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난 별일 없었어요”라고 말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과거의 분노, 죄책감, 두려움이 감정의 언어를 거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응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이 제때 표현되지 못하면, 뇌는 그 감정을 외부의 위협처럼 받아들이고, 자율신경계의 과잉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늘 타인을 먼저 배려하던 사람이 작은 트리거에 의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면, 이는 단순한 스트레스 반응이 아니라 누적된 감정이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발생한 심리적 경보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황장애는 억눌린 감정이 뇌의 방어 시스템을 자극하면서 나타나는 정서 기반 증상입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감정을 회피하는 것이 문제이지, 감정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감정을 말로 꺼낼 수 없는 환경, 표현하면 비난받거나 무시당했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는 방식으로 적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마음에는 정서적 부담을, 몸에는 생리적 부작용을 남깁니다. 감정 표현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내면의 감정 에너지를 건강하게 배출하는 필수 통로입니다.
감정 표현이 공황장애 회복에 주는 심리적 효과
공황장애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감정 인식과 감정 표현의 회복입니다.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기”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불안해요” 또는 “답답해요” 정도의 표현밖에 하지 못하다가, 점차 “지금 속상하고, 좌절감이 들어요”처럼 보다 세분화된 감정 언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 인식과 표현의 반복은 뇌의 경로를 재구성합니다. ‘위협’으로 인식되던 상황이 감정을 표현하면서 정리될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되면, 편도체의 과민 반응도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실제로 감정을 글로 쓰거나 말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자율신경계의 과도한 긴장이 낮아지는 연구 결과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또한 감정 표현은 내면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종종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결과,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정 표현은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외부에 전달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심리 치료, 특히 감정 중심 치료(EFT)에서는 내담자가 감정을 드러내고 그 감정을 치료자와 함께 탐색함으로써 감정의 해소와 재구조화를 유도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감정은 더 이상 억압되어 뇌의 위협 반응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흐를 수 있는 경험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공황의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고, 일상에서도 감정에 덜 위협받는 안정된 정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은 숨길 대상이 아니라,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공황장애는 단순한 ‘불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몸을 통해 발화된 결과입니다. 우리가 공황장애를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감정을 마주보고, 인정하고, 말하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정 표현은 약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을 숨기는 것이 문제를 키우는 것은 분명합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 감정을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슬플 땐 슬프다고 말하고, 불안할 땐 불안하다고 말하는 그 한마디가, 공황의 악순환을 끊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과 연결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라는 느낌은 공황의 주요 트리거 중 하나인데, 감정 표현은 바로 그 고립감을 해소해주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결국,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타인과 연결되며, 삶의 방향을 회복하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마음속에 남겨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을 말로 꺼내보고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해보세요. 그 작은 표현이, 공황에서 회복의 방향으로 가는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은 숨길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고 회복하는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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